데이터로 본 예술 (3) - 성공의 비밀: 예술가들의 명성 뒤엔 네트워크가 있다
2026-03-19
어린 시절 맨해튼 뒷골목을 다니며 그라피티로 이름을 알린 친구 장 미셸 바스키아와 알 디아즈의 이야기는 미술 시장에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십 대의 두 소년이었던 바스키아와 디아즈는 세이모(SAMO)라는 팀을 결성하였고, 스프레이와 크래용을 들고 소호 길거리 이곳저곳에서 그들의 작품을 남겼다. 이후 두 사람은 일련의 이유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데, 같은 지역에서 함께 생활에 왔던 그들의 미래는 이후 크게 달라지게 된다. 유명세를 원치 않은 디아즈와 달리 바스키아는 수많은 예술가들과 만나며 새로운 인맥을 쌓아 나갔다. 바스키아는 뉴욕의 미술계에서 키스 해링을 만나 친하게 지내며 서로의 예술적 비전을 공유하였고, 1980년대에는 당시 이미 팝아트의 선구자로서 세계적인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던 앤디 워홀을 만나 여러 작품을 공동으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워홀은 바스키아에게 예술계에서의 네트워킹과 마케팅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었고, 워홀의 상업적 성공과 명성은 바스키아에게 큰 영감을 제공하였다. 27세의 이른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의 가격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2017년의 소더비 경매에서는 한화 기준 약 1250억에 달하는 가격에 팔리며 당시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바스키아와 디아즈의 이야기는 비슷한 환경, 비슷한 작품 스타일로 출발한 두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그들을 둘러싼 네트워크에 따라 얼마나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어떤 작품의 가치를 평가할 때 작품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과 그것을 그린 작가가 지닌 맥락과 이야기에 함께 주목한다. 따라서 어떤 작품이 명성 있는 박물관에 전시되고 또 얼마나 비싼 가격에 팔리는지는, 사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그 네트워크는 큐레이터, 미술사가, 전시관장, 딜러, 경매 시장, 수집가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2018년 사이언스지에 소개된 알베르트 라슬로 바라바시 교수와 크리스토프 리들 교수 연구팀의 연구는 미술 시장에서의 성공과 명성에 네트워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흥미로운 과학적 법칙으로 설명했다.
성공의 열쇠는 네트워크에 있다#
연구진은 작가들의 전시 기록과 경매 판매기록이 담긴 마그누스(Magnus)라는 앱을 활용하여 49만 6천여 명의 작가들의 전시기록을 수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사실은 작가들의 전시 기록과 판매된 작품의 가격은 매우 불균등한 분포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절반이 넘는 약 52%의 작가가 오직 단 한 번의 전시 기록만을 보유하고 있었고, 전체 작품의 절반 이상의 작품이 4000달러 이하의 가격으로 거래가 되었다. 1300원의 환율을 가정해 보면 대다수의 작품들은 520만 원 이하로 작품을 판매한 것이다. 그러나 비싸게 거래된 작품 중에는 무려 1.1억 달러, 한화로는 1400억원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된 작품도 존재했다.
이렇게 작가마다 작품 가격이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공한 작가는 왜 성공하고, 대다수의 무명 작가들은 왜 한두 번의 전시 이후 사라지게 되는 걸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은 바로 어디서 작품이 전시되었는가이다. MoMA처럼 높은 명성을 지닌 기관은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가를 초청하고자 하며, 영향력 있는 작가 역시 다시 유명한 기관에서 전시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뛰어난 미술관이 어디인지 밝혀낼 수 있다면, 작가들의 성공 여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미술관이나 전시관의 명성은 올림픽처럼 1등, 2등 순위를 쉽게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떤 미술관이 좋은 미술관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연구진들은 이 문제를 바로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해결했다. 그들은 작가들이 거쳐간 미술관들의 전시 기록을 활용해서 미술관(혹은 갤러리) 공동 전시 네트워크(Coexhibition network)를 만들었다. 공동 전시 네트워크에서 노드(점)은 미술관에 해당하고, 링크(연결선)는 연결선의 한쪽 미술관에서 전시를 한 작가가 다른 쪽 미술관에서 전시를 많이 하였는지를 나타낸다. 연구진은 이 방법으로 16,002개의 갤러리와 7568개의 박물관이 노드가 되는 약 1900만 개의 링크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그림 1. 작가들의 전시기록으로 만들어진 미술관/갤러리 공동 전시 네트워크. (출처: 논문 [1] Fig.1 DOI:10.1126/science.aau7224)
그림 1의 공동 전시 네트워크는 미술 세계의 숨겨진 진실을 보여준다. 우선 처음 네트워크를 바라보면 몇가지 같은 색깔로 이루어진 군집들이 눈에 띄는 것을 알 수 있다. 네트워크의 중심부(core)에는 밀집된 군집이 보이는데, 대부분이 유럽과 북미의 미술관들의 군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유럽과 북미의 유명한 미술관들이 공통된 작가 풀(pool)로 연결되어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군집에 속하는 대부분의 허브 미술관 사이를 오가는 예술가들의 흐름은 아주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예를들어 뉴욕 현대 미술관(MoMA)와 구겐하(Guggenheim) 미술관 사이의 연결 정도는 작가들이 무작위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가정한 경우에 비해 무려 33배나 높았다. 이같은 사실은 네트워크의 중심부(유럽과 북미 지역의 중심 미술관들)에 진입한 작가는 계속해서 중심부에서 전시를 하게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술관 네트워크에는 유럽, 아시아, 남아메리카, 그리고 호주 등의 밀집된 군집도 발견되는데, 이런 지역 군집들은 네트워크의 중심부에서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으며, 지역별로 상이한 예술가 집단을 공유하고 있었다.
공동 전시 네트워크에서 중심부를 차지하는 미술관들은 실제로 높은 명성을 지닌 기관들일까? 마그누스 데이터에는 9천 여개의 미술관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A~D 등급으로 평가한 기관 등급 정보가 있었는데, 연구진은 공동 전시 네트워크에서의 중심적인 위치에 놓인 미술관들과 등급 정보를 비교해보았다. 네트워크에서 영향력 있는 노드를 찾는 한가지 지표로 고유벡터 중심성(eigenvector centrality)라는 지표가 있다. 이 중심성 지표는 특정 노드가 얼마나 영향력이 높은 노드를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바탕으로 계산되는데, 어떤 노드가 많은 링크를 가진 여러 허브들과 연결되어 있다면, 이 노드의 중심성은 상대적으로 적은 링크들을 가진 이웃 노드들과 연결된 경우에 비해 증가하게 되는 식이다. 고유벡터 중심성이 높은 노드들, 즉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노드들은 실제로 높은 전문가 평가를 받은 경우가 많았고, 작품 가격의 상한선도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공동 전시 네트워크 위에서의 화가들의 커리어#
공동 전시 네트워크을 통해 작가들의 커리어를 예측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작가들의 전시 기록을 활용하여 화가들의 명성을 정의하였다. 작가마다 처음 다섯 번의 전시를 한 기관들의 네트워크 중심성 지표의 평균값으로 작가의 초기 명성을 정의했다. 연구진은 작가들을 초기명성에 따라 두 집단으로 나누었는데, 상위 20%의 명성을 지닌 작가들을 ‘높은 초기 명성’ 집단으로, 하위 40%의 명성을 지닌 작가들을 ‘낮은 초기 명성’ 집단으로 정의하였다. 초기 전시 기록에서 차이를 보인 작가들의 미래는 크게 달라졌다. 10년 뒤까지 활동을 계속 유지한 작가들을 살펴본 결과 ‘높은 초기 명성’ 집단에서는 39%의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을 한 반면, ‘낮은 초기 명성’을 지닌 집단에서는 14%의 작가들만이 살아남았다.
작가들의 명성은 얼마나 지속될까? 1950년부터 1990년까지 활동한 삼만 여명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작가들의 초기 명성이 마지막 까지 얼마나 유지되는지를 살펴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다. 높은 초기 명성을 가졌던 작가들의 경우 58.6%의 작가들은 커리어 후기에서도 여전히 높은 명성의 기관들에서 전시를 한 반면, 오직 0.2%의 작가들만 하위 40%에 해당하는 낮은 명성 집단으로 이동하였다. 반면 낮은 초기 명성을 가진 작가들의 경우 그들의 후기 전시에서 오직 10.2%의 작가들만 높은 명성 그룹으로 이동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높은 초기 명성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 또한 낮은 초기 명성 그룹에 비해 4.7배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고, 하위 집단에 비해 10%더 높은 비율로 국외 전시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미술 세계에서 초기의 명성의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하고 처음 몇 개의 전시 기록만으로도 어느정도 작가의 장기적인 운명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는 작가들의 커리어가 공동 전시 네트워크 위에서 높은 경로 의존성을 보이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네트워크의 중심부에 도달한 작가들은 지속적으로 중심부에 머물고, 네트워크의 주변부에 속한 집단에서 전시를 시작한 작가들은 계속해서 주변부를 맴돌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미술 세계에서 작가들의 명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설명하기 위한 두 가지 모델을 제시했다. 첫번째 모델에서는 작가들이 공동 전시 네트워크에서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경우(random walk)를 가정하였고, 두번째 모델인 기억 모델(Memory model, 그림2)은 작가가 거쳐온 전시관의 명성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하는 모델로서 과거의 기록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기억 효과(Memory effect)가 있는 모델이다. 그 결과 무작위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첫번째 모형은 모두가 높은 명성을 가지는 것으로 귀결되어 현실과 다른 결과를 보인 반면, 두번째 모델의 경우 처음의 명성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현실과 유사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는 작가들의 과거 전시 기록이 미래의 전시 기록에 예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 3).

그림 2. 경로에 따라 달라지는 작가의 운명. 각 점들은 작가가 전시를 한 기관들을, 화살표는 전시 순서를 보여준다. 기억 효과를 고려한 모델에서는 같은 전시관에서 전시를 하더라도 어떤 경로를 거쳐 이곳에 도달하였는지가 미래의 전시에 영향을 준다.

그림 3. 시간에 따른 작가들의 명성. (A) 데이터에서 얻은 실제 화가들의 명성 변화 (B) 무작위 모형이 예측한 명성 (C) 기억 모델이 예측한 명성. 이전 전시 기록을 반영하는 기억 모델이 실제 화가들의 커리어를 보다 잘 묘사하는 것을 보여준다. (출처: 논문 [1]의 Fig. 3)
돌파구를 찾은 화가들#
그렇다면 커리어 초반에 낮은 명성의 미술관에서 전시한 화가가 훗날 명성 있는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일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일까? 다행히도 확률은 작지만 희망은 있다. 분석 결과, 낮은 초기 명성 집단에서 출발해 높은 후기 명성 집단에 도달한 화가들이 일부 존재했다. 이들은 어떻게 미술계의 유리천장을 돌파할 수 있었을까? 이 화가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대체로 10년 이내의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상위 명성 집단에 도달했고, 같은 하위 명성 집단의 다른 작가들보다 더 다양한 기관에서, 또 서로 다른 수준의 명성을 가진 미술관에서 전시했다. 또한 그들이 전시한 기관들은 높은 명성의 미술관, 예를 들어 뉴욕 현대미술관과 네트워크상 상대적으로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다시 말해 예술가들이 초기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발품을 팔며 다양한 곳에서 활동했는지가 훗날 높은 명성에 도달하는 데 영향을 준 셈이다.
나가며#
이번 장에서 우리는 미술 세계 속 존재하는 네트워크의 정체를 함께 살펴보았다. 단순한 점과 선으로 표현되는 미술관 네트워크는 오늘날 미술 기관들의 연결과 예술가들의 미래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중요한 지도이다. 이 지도는 미술 세계가 다양한 군집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주고, 이 군집들 중 일부는 함께 모여 네트워크의 중심부를 구성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중심부와 주변부에 있는 각각의 군집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과 같아서 한번 네트워크의 중심부에 도달한 화가들은 지속적으로 이름있는 기관에서의 전시를 이어 나간 반면, 중심부에 도달하지 못하고 초반에 네트워크의 주변부에 머문 화가들은 지속적으로 주변부에 머무는 경향을 보였다. 중심부의 작가들은 보다 오랫동안 활동을 지속하고, 더 비싸게 작품을 판매하였으며, 새로운 국가에서의 전시 기회를 얻었다.
이러한 결과는 미술 시장에서 초기 조건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어떤 양극화가 생기는지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다소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러한 법칙을 보다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미술 세계를 만드는 데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첫째는 젊은 작가들이 더 다양한 미술관에서 전시할 기회를 얻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작가들이 미술관 네트워크에서 더 다양한 노드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미래의 가능성을 넓혀 주는 일에 해당한다. 실제로 다양한 곳에서 전시한 작가들은 이후 높은 명성을 쌓을 확률도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둘째는 다양한 기관 사이의 연결 기회를 늘리는 것이다. 이는 미술관 네트워크에 새로운 링크를 추가하는 것과 같다. 기관들 사이의 연결은 얼마나 많은 동일 작가가 양쪽에서 전시했는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한 미술관의 유명 작가 작품이 다른 미술관으로 순회 전시되면 해당 미술관의 명성 역시 함께 높아질 수 있다. 즉, 더 다양한 미술관 사이의 연결 기회를 사회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미술관 네트워크가 지닌 본질적인 명성의 불균등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이 네트워크 지도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참고 논문#
- Samuel P. Fraiberger et al., Quantifying reputation and success in art.Science362,825-829 (2018). DOI:10.1126/science.aau7224